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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현대] 정주영 작가, 그림의 기후감상하자 2023. 3. 28. 11:03728x90반응형
갤러리 현대 / 2023년 2월 15일 ~ 3월 26일
CHUNG ZUYOUNG, METEOROLOGICA
정주영, 그림의 기후“풍경을 본다는 것은 생생한 대상의 경험을 총체적이며 통합적으로 인식하고 그려내는 것이며,
풍경과의 조우는 여전히 새롭고 나날이 새로운(생생화화生生化化) 인식과 정신의 지평을 여는 일이다.”
– 정주영정주영 작가는 풍경을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 풍경에 대한 해석과 그것의 동시대적 의미를 탐구해왔다. 그의 풍경은 주관에 투사하여 나온 것이라기 보다, 주관을 풍경에 투사하여 나타나는 이미지에 가깝다. 대상의 묘사이기보다는 ‘거의 직설적인 몸짓’이나 ‘얼굴’처럼 보이는 그의 화면은 풍경이지만 풍경에 고착되어 있다기 보다 그 표면이나 그 내면을 표류하고 있는 것 같다. 이는 작가가 말하는 ‘관념과 추상을 넘어선 감각과 체험의 구체적이며 원초적인 차원으로 우리 인식의 뿌리를 잡아 이끄는 풍경의 초상’이다.
독일 유학 초기 즈음, 공원의 풍경 그리기부터 시작된 작가의 질문은 김홍도나 정선의 진경산수화를 재해석하는 과정을 밟았다. 이는 자신과 마주보고 있는 현실의 풍경을 바라보는 태도로 이어져 왔으며, 전텅과 현대, 원본과 차용, 부분과 전체, 진경과 실경, 관념과 실재, 추상적인 것과 사실적인 것의 문제를 끊임없이 탐구하였다.
《그림의 기후》전의 출발점에는 <알프스> 연작이 놓인다. 2006년 작가는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큰 봉우리들과 빙하가 어우러진 일대를 현장에 가서 직접 보고 조사할 기회가 있었고, 그때 촬영한 사진 자료와 자신의 기억을 기반으로 <알프스> 연작을 제작하고 있다. 그는 지각변동과 침식작용 끝에 생겨난 붉은색을 띠는 암석을 그리며, 산의 원형적 풍경을 사람의 신체의 일부를 연상하게 하여 보는 이에게 인식과 감각의 전환, 나아가 내면을 투영하도록 안내한다. 알프스에서 마주한 낭만주의적인 하늘 풍경은 ‘기상학’을 주제로 새롭게 선보이는 <M> 연작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정주영은 <알프스> 연작을 준비하며 계절과 시간을 나타내는 하늘에 처음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팬데믹이 장기화되면서, 예상치 못한 사고의 전환을 갖게 되었다. 산과 바위에서 하늘로 회화의 공간을 확장하고 동시에 “재현할 수 있는 것에서 재현할 수 없는 것으로, 알 수 있는 것에서 알 수 없는 것으로 회화적 방법론이 이행해갔던 것”(작가 노트)이다.
<M> 연작에서 작가의 시선은 산 너머의 하늘이라는 공간으로 확장된다. 하늘, 구름, 일출, 일몰 등 고정불가능한 자연의 상태가 캔버스에 포착된다. 하늘의 경계 없는 무한에 가까운 공간은 인간의 어떤 욕망이나 영적 숭고함을 담보하는 장소이며, 구름은 기의와 기표, 실체와 기호 사이에서 표류하는 혼돈의 대상이자 신비와 무한에 대한 표현이다.
실체가 없지만 우리 눈앞에 분명히 펼쳐지는 이 흐릿한 풍경들은 정주영 특유의 회화적인 동시에 선묘적인 필법으로 드러난다. 계속 형태를 바꾸는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인 형태를 띠는 하늘의 풍경들은 수많은 색의 레이어가 쌓인 다채롭고 몽환적인 색채의 그러데이션으로 재현된다.
<M> 연작은 감정과 기분, 행복과 슬픔, 생과 사 등 고정될 수 없고 영원히 순환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삶과 대자연을 은유하며 감상자 내면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전시의 부제인 ‘Meteorologica’는 아리스토텔레스가 공기와 물, 땅에 관한 여러 기후 현상들을 관찰하고 이를 자연철학적으로 기술한 책 <기상학(Meteorology)>의 이름에서 가져왔으며, 연작의 제목은 기상학(Meteorology)의 이니셜 M을 사용해 작가가 그린 순서대로 번호를 부여한 것이다.
《그림의 기후》을 통해 우리는 정주영 작가가 산과 바위에서 물과 안개, 구름과 하늘의 영역으로 회화의 공간을 확장해 나간 시도를 확인할 수 있다. 작가는 고정된 대상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재현 불가능한 ‘기후’를 그리며 ‘그림’의 새로운 변화 가능성을 제시한다.
정주영의 풍경 연작은 스마트폰과 컴퓨터 모니터를 바라보는 것이 일상인 동시대 수많은 사람에게 다시금 불가해한 하늘의 공간을 보게 함으로써, 가장 원형적인 풍경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명상적인 시간을 선사할 예정이다.
글 출처 : 갤러리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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