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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조지 오웰, 동물농장감상하자 2024. 8. 6. 16:31728x90반응형
평소 민음사 유튜브를 즐겨보는 편인데, 아부(아란 부장님 줄임말ㅋㅋ)가 영상에서 이 책을 굉장히 많이 추천해서 궁금했었다. 이제 다른 동네 멀리 도서관을 가지 않고, 집 근처 도서관에서 상호대출서비스를 받아 책을 빌렸다.
대충 줄거리는 이렇다.
인간인 존스가 운영하는 메이너 농장에는 개, 돼지, 양, 말, 당나귀, 소, 닭 등 여러 동물들이 노예처럼 일하며 하루를 살아간다. 어느 날 늙은 수퇘지 메이저가 한밤중 동물들을 모아 인간의 야비함에 대해 지적하며 혁명을 일으키는 연설을 시작한다. 동물들은 연설을 듣고 모두 분노에 휩싸여 동조하며 돼지들을 선두로 인간들을 농장에서 모조리 내쫓는다. 그 후 동물들은 '네 발은 좋고 두 발은 나쁘다.' 라는 구호 아래 '메이저 농장'에서 동물이 주가된 '동물 농장'이라는 이름으로 평등한 이상 사회를 건설하고 제7계명을 세운다.
하지만 읽고 쓸 줄 안다는 이유로 점점 돼지들은 동물들의 공동체 생활에서 특권을 누리기 시작하고, 젊은 수퇘지 나폴레옹이 경쟁 상대이던 스노볼을 모함하여 내쫓는다. 권력을 잡은 나폴레옹은 스노볼을 내쫓은 이후에도 스노볼을 모함하며 독재 사회로 전력하고 만다. 돼지들은 7계명을 어기고, 7계명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대로 수정하며 인간들의 악습을 되풀이한다.
기억력이 나쁘고 무지한 동물들은 나폴레옹의 독재에 휘둘려 이전 인간 존스가 운영하던 때보다 더 심한 노동 착취를 당한다. 세월이 흘러 혁명에 참여했던 동물들은 하나둘씩 사라진다.
등장동물의 이름 속 숨겨진 의미
- 동물들이 반란과 혁명을 일으키는데 주된 핵심 인물 메이저 영감 > major : 주된
- 듣기 싫은 소리로 동물들을 선동하는 스퀼러 > squeal : 꽥 소리를 지르다
- 프랑스 혁명을 주도했지만 결국 자신이 황제가 되는 나폴레옹 (우리는 위인이라고 생각하지만 유럽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지는 않는다고 한다.)
사람과 가장 비슷한 침팬지, 원숭이(영장류)를 등장시켜도 되었을텐데 굳이 가축 동물을 등장시킨 이유?
인간은 식량과 노동력을 얻기 위해 동물들을 가축화한다. 때문에 반항하지 않고 복종하는 성질이 온순해지고 사람을 잘 따르는 가축이다. 그렇다면 가축화에 가장 성공한 종은 무엇일까? 바로 ‘인간’이다. 인간이 스스로 동물적 본능을 억제하고 사회에 맞춰가는 과정을 ’자기 가축화‘라고 한다. 우울증, 불안, 편집 등 인간이 보이는 정신적인 문제들도 가축처럼 사회생활을 하는 동물에게서만 관찰된다. 정신적인 문제들이 인간 가축화 과정의 부산물일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이것을 가축화라고 부르기 민망하니 문명화, 사회화라고 불리는게 아닌가 라는 해석도 있다. 따라서 소설 속에는 가축 동물들이 등장하지만 본질적으로는 가축 동물과 인간이 같다고 볼 수 있다.한 마디로 문제의 핵심은 <인간>이오. 인간은 우리의 진정한 적이자 유일한 적입니다. ... 인간은 생산하지 않으면서 소비하는 유일한 동물입니다. 그는 젖을 생산하지도 않고 달걀을 낳지도 않으며 힘이 부쳐 쟁기도 끌지 못하고 토끼를 잡을 만큼 빨리 뛰지도 못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모든 동물의 주인입니다. 그는 동물들을 부려먹고는 굶어죽지 않을 만큼의 먹이만 주고 나머지는 모두 자기가 챙깁니다.
두 발로 걷는 것은 모두 우리의 적입니다. 네 발로 걷거나 날개를 가진 것은 모두 우리의 친구입니다. 인간에 맞서 싸우는 데엔 우리 동물들이 결코 인간을 닮아서는 안 된다는 점도 기억하시오. 여거룹니 그를 정복하더라도 절대로 그의 악한 짓거리들을 모방해선 안 됩니다.
일곱 계명
1. 무엇이건 두 발로 걷는 것은 적이다.
2. 무엇이건 네 발로 걷거나 날개를 가진 것은 친구이다.
3. 어떤 동물도 옷을 입어서는 안 된다.
4. 어떤 동물도 침대에서 자서는 안 된다.
5. 어떤 동물도 술을 마시면 안 된다.
6. 어떤 동물도 다른 동물을 죽여선 안 된다.
7.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오늘 있었던 공포와 살육의 장면들은 늙은 메이저가 그들에게 반란을 사주했던 그날 밤 그들이 꿈꾸고 기대했던 일이 아니었다. 그녀의 머릿속에 담긴 미래의 그림이 있었다면 그것은 굶주림과 회초리에서 벗어난 동물들의 사회, 모든 동물이 평등하고 모두가 자기 능력에 따라 일하는 사회, 메이저의 연설이 있던 그날 밤 그녀가 오리새끼들을 보호해 주었듯 강자가 약자를 보호해 주는 그런 사회였다.
동물들이 이긴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기진맥진했고 거의 전원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들은 절룩거리며 천천히 농장으로 집결했다. 잔디 위에 죽어자빠진 동물들을 보고 몇몇 동물은 눈물을 떨구었다. 그들은 풍차가 섰던 자리에 이르자 슬픈 침묵에 잠겨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그랬다. 풍차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
"저 총은 뭣 땜에 쏘는 건가?" 복서가 물었다.
"우리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서요." 스퀼러의 대답이었다.
"무슨 승리?" 복서가 되물었다.
스퀼러는 돼지들이 매일 엄청난 노동을 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예를 들자면 그 노동은 서류 파일이니 보고서니 의사록이니 각서니 하는 신비한 것들을 만드는 일이었다. ... 그 일이 농장의 복지를 위해 최고로 중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돼지나 개들이 자기네 먹을 식량을 제 손으로 생산하는 일은 없었다.
나이든 동물들은 때때로 흐릿한 기억을 더듬어 존즈를 마악 쫓아내고 났을 때의 그 반란 초기의 농장이 지금보다 더 살기 좋았던 것인지 아니면 더 못했던 것인지 기억해 보려 했다. 하지만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들로선 지금의 삶을 견주어 비교해 볼 건덕지가 없었다. ... 오직 늙은 당나귀 벤자민만은 자신의 긴 생애를 한 토막도 빠짐없이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인즉 지금의 사정이 옛날보다 더 나을 것도 못할 것도 없고 앞으로도 더 나아지거나 더 못해지지 않을 것이며 굶주림과 고생과 실망은 삶의 바꿀 수 없는 불변 법칙이라는 것이었다.
일을 끝낸 동물들이 마악 농장 축사로 오고 있는데 마당 쪽에서 크게 놀란 듯한 말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동물들은 깜짝놀라 발을 멈추었다. 클로버의 목소리였다. 그녀의 울음 소리가 다시 들렸고 동물들은 마당으로 달려갔다. 클로버를 놀라게 한 그 광경을, 다른 동물들도 보았다. 돼지 하나가 두 발로 서서 걷고 있었다.
일곱 계명은 오간 데 없고 단 하나의 계명만이 거기 적혀 있었다. 그 계명은 이러했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
창 밖의 동물들은 돼지에게서 인간으로, 인간에게서 돼지로, 다시 돼지에게서 인간으로 번갈아 시선을 옮겼다. 그러나 누가 돼지고 누가 인간인지, 어느 것이 어느 것인지 이미 분간할 수 없었다.
풍자(Satire)는 무엇보다 당대성의 서사 장르이다. 풍자가 물어뜯고 비꼬고 우스갯감으로 만드는 것은 그 풍자가 생산되어 나온 당대 사회의 실존 인물, 사회환경과 제도, 이데올로기, 사건, 편견 같은 것들이다. 당대의 것들에 대한 비판, 공격, 희화화가 아니라면 풍자는 사실상 무의미하다. 풍자는 동시에 약자의 서사이다. 이 약자는 권력보다는 진실의 편에 서고자 하기 때문에 궁지로 몰리는 약자이다. 약자의 이야기이므로 풍자가 두들기는 대상은 권력을 쥔 부당한 강자, 지배 세력과 이데올로기, 지배적 제도와 관행이다.
위는 동물농장에서 나오는 동물들이 가르키는 뜻.
우리가 동물농장의 풍자문맥과 우의성을 이처럼 구분해 보는 것은 이 작품의 효과적 수용을 위한 한 가지 방법적 안내에 불과하다. 우리는 이 구분으로부터 동물농장을 풍자로 읽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끌어낼 필요가 없고, 그래서 이 작품을 반드시 초문맥적 우화로만 읽어야 한다는 식의 경직된 결론에 도달해서도 안된다. 동물농장은 풍자와 우화라는 두 서사 형식을 결합한, 문자 그대로 <풍자우화>이기 때문에 그 두 형식 사이에 어떤 우열관계가 설정될 필요는 없다. 우화로서의 동물농장은 풍자 형식에 의존해 있고 풍자로서의 동물농장은 우화 형식에 의존해 있다. 우리의 구분은 이 작품이 특정의 역사적 풍자문맥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 배경을 넘어 어떻게 더 넓은 의미의 우의적 풍자가 될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해명해 보고자 한다.
동물농장이 함축하는 메시지의 하나는 동물들의 무지와 무기력함이 권력의 타락을 방조한다는 것이다.
역사적 사건(스탈린 독재 체제)을 알고 읽었다면 더 재밌게 읽었을 풍자우화소설.
상현이한테 이번 읽은 책을 알려주니, 이미 반공 소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정치, 사회적 문제에 무관심했던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소설 속 농장의 동물들처럼 무지와 무기력함에 방치되지 않고, 가짜와 진짜 정보를 분별해내는 힘을 길러야겠다고 생각했다.728x90반응형'감상하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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